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쥘 베른 (문단 편집) == 생애 == 원래 법학을 공부했지만 정작 그는 나중에 문학을 전공했다. 출생한 도시가 항구 도시인 [[낭트]]였던 탓인지 여행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사랑하는 사촌 누이에게 산호 목걸이를 선물하려고 밀항을 시도했다가 붙잡혀오는 해프닝'''도 있었을 정도. 이때 부모님에게 '''앞으로는 꿈속에서만 여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나중에 그의 작품들을 쓸 때 큰 보탬이 되었다. 1851년 지인의 경기구 설계도에서 영감을 받아 '기구 여행'이라는 작품을 쓰는데, 몇 년 후 이걸 출판사에 들고 갔더니 편집자였던 에첼에게 너무 과학적이라서 재미가 없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에첼의 도움으로 이 작품을 수정하여 문학적인 재미를 더해서 '기구를 타고 5주간'이라는 작품으로 수정하여 1863년에 발표했고,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그 다음작으로 '20세기 파리'를 쓰지만 20세기 파리 자체가 염세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인지라 에첼은 이게 출간하기에는 좋지 않은 작품이라고 여겨 결국 출간되지 않았고, 다음 해인 1864년에 '지구 속 여행'을, 1865년에는 [[지구에서 달까지]]를 연속 출간하면서 대히트를 치고, 이후로도 '경이의 모험'이라는 시리즈를 쓰는 등, 엄청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54권이나 되는 작품들을 창작했다. 말년으로 갈수록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생겨 사교성이 무척이나 떨어졌으며 사람과의 접촉도 거의 피하게 되었다. 말년에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 1888년부터 10년 넘게 아미앵 시의회의 시의원으로 활동한다. 그의 가정사는 다소 불우했는데, 정신병에 걸린 조카 개스통이 발광하면서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을 뻔했으며 평생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었다. 개스통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해 거기서 삶을 마쳤다. 또 하나 뿐인 아들인 미셸 베른(미셸 장 피에르 베른/ Michel Jean Pierre Verne , 1861년 8월 3일 – 1925년 3월 5일))은 평생 동안 쥘 베른에게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래도 늘그막에 아들과 화해하고 같이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근대]] [[SF]] 문학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베른은 1905년 3월 24일 아미앵의 자택에서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 마들렌 묘지에 묻혔으며 그를 기념해 그가 살던 롱그빌 거리가 쥘 베른 거리로 바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